의병장 문태서 장군 흉상 - 함양읍 상림공원
1. 의병대장 문태서(文泰瑞) 장군 (1880~1912) 약전
- 본관은 남평(南平), 강성군 문익점 선생의 23세손으로 현 함양군 서상면 출신이다.
일명 태수(泰洙)라고도 한다.
- 전하는 바로는 1904년 금강산에 들어가 무예를 닦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개하여 의병장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을 찾아 창의를 결의하고
1906년 60여명의 동지들을 모아 의병활동에 투신했다고 한다.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사적비 참조)
- 그러나 독립운동사 1권에서는 그가 당시 참교(參校, 현재의 부사관) 출신으로 1907년 전국
연합의진이 서울진공작전을 벌일때 의병 100여를 이끌고 호남창의대장으로 참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산일보 이태룡의 의병장 이야기 참조)
- 일제의 기록에서도 문태서 장군은 1907년 11월 이후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운동사의
기록이 더 신빙성있다 할 것이다. 위 사실을 종합하여 볼 때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당시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으로 대한제국군이 강제해산된 후에 그는 의병활동에 투신했다는 것이다.
- 그는 장수와 무주의 의병장인 박춘실, 전성범 부대를 휘하로 맞아들여 부대를 재편성, 덕유산을
중심으로 의병전쟁을 수행하여 함양, 무주, 장수, 남원 뿐만아니라 충북 옥천까지 진출하는 등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일제의 비밀문서에 나타난 그의 의병전쟁기록은 무려 124회에 달한다.
- 그 비결이라면 그 자신이 군인출신으로서 병의 운용, 전술등에 능했을 것으로 볼 수 있고,
군기를 엄하게 하여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의병을 빙자해서 약탈을 일삼던 자들을 처단하는
등 민심을 확실히 얻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들 수 있다.
- 경술국치 이후 그의 의병전쟁은 1911년 여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진도
큰 타격을 입어 의병활동이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 그는 1911년 9월 27일 고향인 안의
장구지동을 찾았는데 그의 사촌매부인 임종두와 친구인 조한기가 그를 유인하여 술에 취하게
만들어 다리를 부러뜨린후 일제 헌병대에 넘기고 말았다. 그들은 일제와 친일파인 당시 안의
서상면장인 최영내에게 매수된 자들이었다.
- 그렇게 1911년 9월 일제에게 체포되어 진주에서 대구, 서울로 이감되었고 그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결국은 1913년 2월 4일 옥중에서 미결수로 자결하여 순국했다고 전한다.
1963년 대한문국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서울 국립현충원 광복선열묘역에
안장되었다.
2. 그의 삶에 대한 소회(所懷)
- 문태서 장군의 최후가 뼈아프다. 차라리 일제와 전투중에 전사하셨더라면 덜 슬플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를 죽음으로 내몬사람이 우리나라 사람, 그것도 친척이고 친구였다.
그만큼 일신의 영달이 사람된 도리보다 더 중했던가?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申乭石) 장군의 최후도 그랬었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 1909년 무주의 사람들이 그를 위해 세운 비가 그를 말해준다.
盡忠輔國 下濟萬民 진충보국 하제만민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보위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구했다.
爲國義兵大將 文泰瑞之碑 위국의병대장 문태서지비
나라를 위한 의병대장 문태서의 비
名振四海 難盡其德 명진사해 난진기덕
그 이름 온 세상에 떨치니 그 덕을 어찌 다 말하리!
-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 그것은 이땅에 살아있는 역사이며
그를 왜에게 넘긴 부왜 모리배를 벌하는 것은 엄정한 역사의 심판대이다.
우리 역사가 그를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한다면 그의 희생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할 것이다.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사적비, 부산일보 이태룡의 의병장 이야기 참조
[출처] 경남 함양군 - 의병장 문태서 장군 (1880~1912)|작성자 방랑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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