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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가다 (3일차)

운산(雲山) 2011. 4. 5. 10:53

이번에는  "앙코르 톰" 

 

앙코르 왕조의 가장 영화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 Angkor Thom 이다.

 

앙코르 톰은 "큰 도시’를 의미하며, 

한 변이 3km나 되는 해자로 둘러싸인 지역 전체에

약 100만 이상의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앙코르 톰은 12세기말 자야바르만7세가

왕국의 수도로 조성한 것으로 

그 중앙에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바이욘 사원을 건축했다.

 

성벽의 높이는 8m이고 사방에 약 20m 정도의

해자(인공저수지)가 성벽 외곽에 있다.

 

앙코르 톰이라는 지역내의 유적지는 바이욘,코끼리 테라스,

문둥이왕의 테라스,피메아나키스,바푸욘 사원,프레아 칸 사원,

닉펜사원, 타솜사원, 프레아피투사원, 크레앙,

프라삿수오르프랏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전체 사원을 모두 구경을 못하고 바이욘,바푸온,피메아나키스,

코끼리테라스, 둥이왕의 테라스, 크레앙을둘러 볼 수 있었다)

 

 

 

 <앙코르톰의 남문 입구>

 

앙코르톰에 들어가기 위한 문은 동서남북의 네개의 문과

동쪽에 승리의 문을 합해 모두 5개의 문이 있다고 한다. 

 위 사진은 남문의 모습이다

 

긴 도로 입구 양측에는 각 54개씩의 석상들이 서 있는데

악마 상들은 오른쪽에, 신상들은 왼쪽에 서있다.

 

이 많은 석상들은 하나 같이 같은 표정인 데,

그 당시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판에 찍은 듯한

똑 같은 석상들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왼쪽 신상은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고,

오른쪽 악마는 굳은 표정에 우리나라 절 입구에있는 사천왕을

연상케 한다.

 

이것은 모두 108개의 석상들로 앙코르 톰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것은 불교의 108번뇌의 숫자와도 일치한다. 

 

 

 

 

<바이욘사원>

바이욘 사원은 몇개의 대문으로부터

대략 1.5km 정도 떨어진 앙코르 톰의 정중앙에

높이 45m의 주탑이 세워졌고, 그 주변에 54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40여개 정도만 남아있는 중앙사원이다.

 

지리적으로 왕도의 중심에 있는 중앙사원일 뿐만 아니라

신들이 사는 천상계의 중앙에 있는 메루산(수미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바이욘 사원은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1181-1201년)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크메르의 영웅이다.

 

 

 

앙코르 톰 성내에 있는 왕궁은 가장 초기에 지은 것이며

10세기에서 11세기 전반기의 왕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왕궁을 둘러쌌던 성벽과 주춧돌, 그리고 입구 탑들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있어 그 웅대하였던 규모를 증명하고 있다.

 

 

<사원 벽면에 조각된 부조>

 

인간의 평범한 일상들이 부조된,

힌두교 분위기의 불교사원.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천국과 지옥이 스펙터클하게 부조된

 바이욘 사원의 조각 작품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산파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는 여인의 모습과

입김으로 불씨를 살려 밥을 짓고 가마솥에 돼지를 삶는 남자들,

가슴을 드러낸 크메르 여인을 희롱하는 중국 상인,   

 

 전장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거북이를 쥐어주는 아내,

거북이를 움켜쥐고 아내를 돌아보는 남자,

거북이의 의미는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의미겠지요

 

 

 

잔칫날의 풍경, 코끼리를 타고 가는 왕과 호위하는 병사들,

부족들의 군사행렬, 머리에 투구를 쓴 참파족의 군대와

사타구니만 겨우 가린 벌거숭이로 방패를 든 크메르족 군인들

 

톤레삽 호수를 건너 침범한 참파족들의 전투선 아래로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평화로운 물고기의 모습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상의 모습들.

 

 

<바이욘사원 미소짓는 관음보살상>

 

3층 바이욘의 미소라고 불리우는 사면상이다.

바이욘사원은 특히 사원에 조각되어 있는 54개의 4면불이 유명하다.

얼굴의 숲이라고도 할 바이욘 사원은 탑이 모두 54기나 된다.

탑마다 4개의 얼굴이 조각되어있어 총 조각상 숫자는 216개가 된다.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평화롭고

온갖 번뇌가 사라질 것만 같은 표정이다

 

이 밀림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돌 하나 구하기 힘든 정글에서 이 무수히 많은 돌들은

어디서 어떻게 실어왔는지,

 

이 건축물을 세운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갔는지 이 도시가 왜 밀림 속에 버려졌는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게 없어 불가사의로 꼽힌다.

 

<사면상 앞에서>

 

 

 

 

<사면상 앞에서>

 

 

이렇게 전통 복장을 하고 1불만 주면 함께 포즈를 취해 주었다

 

        <코끼리테라스>

코끼리테라스는 12세기 말,자이바르만7세 때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가 3m에 길이가 300m에 이르는 담장과도 같다.

하부면에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어 "코끼리 테라스"란

이름이 붙혀졌다고한다

 

 

평소에는 정원으로 사용되지만 외국사신을 영접하거나

국가의공식행사,군대사열,전투에 참가하는 군대전송,

귀환한 군대환영 등 행사로 활용되었다고한다

 

 

<문둥왕 테라스>

 

왜 하필이면 문동왕 테라스일까 ?

이 테라스를 만든 자야바라만 7세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과

발굴당시 왕의 조각상 표면매끄럽지 못하여 일면 문둥왕이라고 한다

 

왜 문둥왕이 되었냐 하면 자야바라만 7세가  자기 앞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던

부하의 목을 벨 때 독기 어린 피가 왕의 몸에 튀겨 나병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붉은 천으로 옷을 입혀 놓은 이유는 ?

문둥병이 걸리면 손과 발, 그리고 남자의 거시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가린거란다. 어찌 본깨로 그럴 듯도 하다

 

 

이 코끼리테라스, 문둥왕테라스 앞 건너편에

거대한 지붕을 인 것 같은 老巨樹가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클 때까지 이 곳에는 태풍도 없냐고 물어 봤더니,

이곳 캄보디아는 적도지역이라 태풍이라고는 없단다.

아마 "태풍의 눈"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이러한 명패가 있었는 데, 어떤게 나무이름인지.....(잘 아는 사람 누구없소 ?)

 

<참고사항>

 

-캄보디아의 역사 (요약)-

 

2000년전 본래 캄보디아엔 크메르인이 터를 잡았다.

크메르인은 9세기에서 13세기 까지 강력한 제국을 건설 하였으며

현재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100여개의 사원들은 이 시기에

건설하였다고 함

 

크메르제국은 최초의 왕 자야바르만2세(802년~850년)가

세웠다고한다. 그 후 수리야바르만2세(1112~1065년)와

자야바르만7세(1181~1201년)때 전성기였고

지금의 라오스,타이,베트남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00여개의 사원들은 모두 이 시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크메르제국은 200년 가까이 이웃 타이와 베트남 등

항상 외침에 시달려야 했고,

 1351년 타이의 아유타야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기울기 시작,

더디어 1440년경에는 국력이 쇠퇴하여 당시 수도였던

앙코르를 버리고 현재 수도인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겼다고한다

 

                                그리하여 이 위대했던 터전은 1860년 프랑스인

                              식물학자 앙리 무오가 발견하기 까지 약 400 여년간

                                   밀림속에서 사라진 채 잠자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