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산토끼' 발상지 '산토끼 학교' 창녕 이방초 가 보니… | |
아이들 해맑은 웃음 “토끼 닮았죠” 마산 출신 이일래 선생 재직 중 나라 잃은 마음 담아 작사·작곡 | |
아이들에게 토끼 사육장이 어디 있는지 묻자 놀이를 멈추고 교정 한편에 있는 팔각정 모양의 토끼 사육장으로 안내했다. 사육장 안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토실토실한 토끼들이 왕성하게 먹이를 먹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토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그럼요, 토끼가 얼마나 귀여운데요”하며 활짝 웃는다. 하지만 토끼를 안아보겠느냐고 하자 “무서워요”하며 손사래를 친다.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아이들 모습을 보니 토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생 10명을 포함해 전교생이 52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학교인 이방초등학교는 일명 ‘산토끼 학교’다. 지난해 8월 30일 학부모, 주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산토끼 학교’ 선포식을 가졌다. 이방초등학교가 ‘산토끼 학교’를 자처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국민동요 ‘산토끼’가 탄생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토끼’를 부를 줄 알지만 ‘산토끼’의 작사·작곡가가 마산에서 출생한 이일래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이방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이일래 선생은 가을 어느 날 학교 뒷산인 고장산 기슭에서 석양을 바라보다가 바로 앞에서 두려움도 없이 깡충깡충 뛰노는 산토끼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가락을 흥얼거리다 집으로 돌아와 오선지에 곡을 만들어 적고 가사를 붙여 ‘산토끼’를 탄생시켰다. 일제의 압박 속에 있는 국민의 심정을 토로한 억눌린 항일사상과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이 담겨 있는 ‘산토끼’는 이방초등학교 학생이 즐겨 부르기 시작해 이웃 학교를 거쳐 전국으로 널리 퍼졌다. 멋 모르는 어린이들은 노래가 좋아 불렀으며 나이 든 어른들은 마음씨가 곱기만한 토끼로 비유되던 조국을 잃은 서러운 마음을 노래에 담아 불렀다. 이일래 선생은 1938년 ‘산토끼’, ‘봄노래’ 등 작사·작곡한 13편과 이원수, 최순애, 이은상, 이광래 선생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7편을 실은 ‘조선동요작곡집’을 발간했다. 하지만 일제가 민족 감정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산토끼’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면서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일제의 탄압 때문에 이일래 선생 자신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해 노래가 만들어진 지 반세기 동안 작사ㆍ작곡가 미상으로 남아 있다가 지난 1975년 ‘조선동요 작곡집’의 영인본이 나오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때부터 이방초등학교에는 ‘산토끼’ 관련 기념물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1978년 12월 제자들이 뜻을 모아 교정에 산토끼 노래비를 건립했을 때 이일래 선생도 제막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9년 7월 10일 이일래 선생은 불멸의 노래 ‘산토끼’를 남긴 채 숨을 거뒀다. 2007년 8월 이일래 선생 흉상과 음악비 제막식이 열렸으며 2008년 11월에는 ‘조선동요작곡집’에 실린 20곡을 새긴 동요비가 세워졌다. 이 외에도 산토끼 쉼터, 산토끼 분수대가 설치됐으며 급식소와 본관 건물의 벽면에는 산토끼 벽화가 그려졌다. ‘산토끼 학교’ 학생들의 학교사랑은 대단하다. 4학년 김가빈 학생은 “산토끼 노래가 만들어진 역사와 전통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석연 교장은 “내년 토끼 해에는 모든 어린이들이 토끼처럼 신나게 뛰놀며 온순하고 정직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남신문 기사 2011. 1. 4일자 양영석기자 yys@kn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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